2009년 08월 22일
국토대장정 - 분단선을 걷다 후기
역시나 무슨 일이든 지나보면 꿈 같다는 생각이 든다.
국토대장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대장정 조원들과 모임을 하면서 만나봐도 도무지 그 지옥같았던 기억들은 어느새 잊혀진듯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을 잡고 기억을 해내지 않는 이상은..
따라서 지금 쓰는 후기 또한 안 쓰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큰 의미가 있으랴..라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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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정리하면 "너무 아팠다"
1학기 예술과의학 - 하상필 교수의 수업에서 들은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고통의 의미]였다. 그때 나는 육체적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말 할 수 있다.
가장 큰 성과가 고통의 의미를 알아낸 것이다.
유일하게 감정 제어하고 이성에따라 행동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을 참을 때" 실현된다.
사람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고통을 참는 일은 몸의 주인이 되는 직접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토대장정을 하던 도중의 나는, 몸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고통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운명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한마디로 말 하면 철저하게 패배했다.
행진을 시작한 둘쨋날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셋째 날부터 시작된 왼쪽 발목 윗부분의 아픔은 국토대장정 내내 나를 괴롭혔고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왼쪽 발목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또한 다섯째 날부터 시작된 오른쪽 무릎의 고통은 왼쪽 발목의 고통을 넘어서서 나중에는 왼쪽 발목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오른쪽 무릎만 아팠다.
그 다섯째날 오른쪽 무릎이 너무너무 아파서 행렬의 맨 마지막에 뒤쳐져서 사람들이 계속 나를 응원해주고 처음에는 카메라까지 맨 소영이가 부축해주고 나중에는 행진주체가 부축해줘서 간신히 어느 음식점의 운동장에 도착한 저녁, 도사처럼 차려입으신 분이 강연을 하러 오셨다.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기억나는 부분은 " 극심한 고통속에 놓이면 고통이 한군데로 집중되며 그 고통속에서 계속 참아나갈 때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지는 못했다.. 고통에게 패배했으니까. 하지만 고통이 한군데로 뭉치는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든 통증은 오른쪽 무릎으로 모야졌다. 심지어는 행진도중 혀를 씹어서 밥 먹을 때 피의 맛이 나고, 침을 뱉으면 피가 섞여 나오는 와중에도 대장정 내내 혀에 상처난 줄 모르고 있었다.. 혀에 상처난 줄 안 것은 대장정 끝나고 이틀 뒤부터였다.
고통에 패배했다는 말은 내가 결국 뒤처지다못해 승합차 신세를 졌기 때문에 그렇다. 하루는 승합차에 탔다 말았다 했고 다른 하루는 통째로 살보와 함께 승합차 신세를 졌다. 더 비참한 것은 나중에 병원에 들러 받은 정형외과 약이었다. 이 약은 다리가 아팠던 모든 대원들이 공통으로 먹었던 거였다. 즉 약이 다 같았다. 효과는 정말 좋았다. 걸을때 생기는 고통이 거의 사라졌다. 부작용은 정신이 몽롱해지고 잠이온다는 것. 즉 신경 자체를 무뎌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듯했다. 덕분에 마지막 3일을 성공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약이 없었다면 정말로 완주를 못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나 또한 당시에 그 점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마지막 날에는 일어나자마자 약을 먹고 더 상 먹지 않았다. 결과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통일 전망대에 도착하기 한참전부터 환장해버리는 줄 알았고 도착하고부터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 약의 효과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생각 많이 들었다. 항일 유격대나 지리산 빨치산들은 나보다 빠른 걸음으로 더 많은 거리를 그것도 밤에 이동했는데 나는 이모양인가. 내가 만약 일제시대나 6.25때 산에 들어갔으면 아무리 산사람들이 인력난을 겪더라도 정중하게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3시간정도 뛰어다니다가 총 맞고 죽지 않았을까..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내가 워낙 몸이 비대하고 운동을 안해서 고통이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지금의 내 상태에서는 고통을 온전히 참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국토대장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 대장정 조원들과 모임을 하면서 만나봐도 도무지 그 지옥같았던 기억들은 어느새 잊혀진듯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을 잡고 기억을 해내지 않는 이상은..
따라서 지금 쓰는 후기 또한 안 쓰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큰 의미가 있으랴..라는 생각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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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정리하면 "너무 아팠다"
1학기 예술과의학 - 하상필 교수의 수업에서 들은 중요한 주제의 하나가 [고통의 의미]였다. 그때 나는 육체적 고통은 겪어보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나 뜬구름 잡는 소리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 의미를 말 할 수 있다.
가장 큰 성과가 고통의 의미를 알아낸 것이다.
유일하게 감정 제어하고 이성에따라 행동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이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고통을 참을 때" 실현된다.
사람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가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주인이 되어야한다. 고통을 참는 일은 몸의 주인이 되는 직접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토대장정을 하던 도중의 나는, 몸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고통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운명의 주인이 되는 과정에서 한마디로 말 하면 철저하게 패배했다.
행진을 시작한 둘쨋날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셋째 날부터 시작된 왼쪽 발목 윗부분의 아픔은 국토대장정 내내 나를 괴롭혔고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다. 글을 쓰는 지금도 왼쪽 발목이 완전히 펴지지 않는다...
또한 다섯째 날부터 시작된 오른쪽 무릎의 고통은 왼쪽 발목의 고통을 넘어서서 나중에는 왼쪽 발목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오른쪽 무릎만 아팠다.
그 다섯째날 오른쪽 무릎이 너무너무 아파서 행렬의 맨 마지막에 뒤쳐져서 사람들이 계속 나를 응원해주고 처음에는 카메라까지 맨 소영이가 부축해주고 나중에는 행진주체가 부축해줘서 간신히 어느 음식점의 운동장에 도착한 저녁, 도사처럼 차려입으신 분이 강연을 하러 오셨다. 여러 말씀을 하셨지만 기억나는 부분은 " 극심한 고통속에 놓이면 고통이 한군데로 집중되며 그 고통속에서 계속 참아나갈 때 진정한 자신을 찾을 수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을 찾지는 못했다.. 고통에게 패배했으니까. 하지만 고통이 한군데로 뭉치는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모든 통증은 오른쪽 무릎으로 모야졌다. 심지어는 행진도중 혀를 씹어서 밥 먹을 때 피의 맛이 나고, 침을 뱉으면 피가 섞여 나오는 와중에도 대장정 내내 혀에 상처난 줄 모르고 있었다.. 혀에 상처난 줄 안 것은 대장정 끝나고 이틀 뒤부터였다.
고통에 패배했다는 말은 내가 결국 뒤처지다못해 승합차 신세를 졌기 때문에 그렇다. 하루는 승합차에 탔다 말았다 했고 다른 하루는 통째로 살보와 함께 승합차 신세를 졌다. 더 비참한 것은 나중에 병원에 들러 받은 정형외과 약이었다. 이 약은 다리가 아팠던 모든 대원들이 공통으로 먹었던 거였다. 즉 약이 다 같았다. 효과는 정말 좋았다. 걸을때 생기는 고통이 거의 사라졌다. 부작용은 정신이 몽롱해지고 잠이온다는 것. 즉 신경 자체를 무뎌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는듯했다. 덕분에 마지막 3일을 성공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약이 없었다면 정말로 완주를 못 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고통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나 또한 당시에 그 점을 알고 있었고 따라서 마지막 날에는 일어나자마자 약을 먹고 더 상 먹지 않았다. 결과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통일 전망대에 도착하기 한참전부터 환장해버리는 줄 알았고 도착하고부터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 약의 효과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생각 많이 들었다. 항일 유격대나 지리산 빨치산들은 나보다 빠른 걸음으로 더 많은 거리를 그것도 밤에 이동했는데 나는 이모양인가. 내가 만약 일제시대나 6.25때 산에 들어갔으면 아무리 산사람들이 인력난을 겪더라도 정중하게 거절당하거나 아니면 3시간정도 뛰어다니다가 총 맞고 죽지 않았을까..
고통을 참을 수 있는 정도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고 내가 워낙 몸이 비대하고 운동을 안해서 고통이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지금의 내 상태에서는 고통을 온전히 참아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 by | 2009/08/22 01:40 | 트랙백 | 덧글(2)



